무용지물 전락한 증권집단소송제 | ② 실효성 떨어지는 법률

법은 있지만 사실상 법조항이 소송 막아

2015-10-22 10:53:36 게재

소송대상 여럿이면 소재지 법원에 각각 소 제기

유사한 금융상품도 증권 아니면 집단소송 못해

증권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된지 10년이 지났지만 7건의 소송만 제기됐다. 지나치게 소송을 억제하도록 만든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이 문제라는 비판에 법무부가 지난 2013년 개정 작업에 착수했지만 지난해 중단됐다.

22일 법조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법무부 개정위원회가 만든 법률안에는 증권관련 집단소송의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었다.


현행 법률은 증권 관련 집단소송이라고 하지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범위를 기업의 △유가증권신고서, 사업설명서의 허위·부실기재 △사업보고서, 반기·분기보고서의 허위·부실기재 △내부자거래 및 시세조종행위 △감사인의 분식회계·부실감사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공개매수신고서나 주요사항 보고서의 허위기재 등으로 인한 투자자의 피해도 집단적 구제가 필요한 사안이지만 소송대상에서는 빠져 있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에는 사업보고서·반기보고서·분기보고서·주요사항보고서 등 중요사항에 관한 거짓의 기재 등으로 투자자 손해가 발생하면 배상책임을 지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은 '주요사항보고서'의 허위기재 부분을 소송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한 관계자는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 소송대상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금융투자상품으로 대상 확대해야 = 또한 증권사의 펀드 부당운용과 같이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는 사안도 집단소송 대상이 아니다.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이 도입되기 전인 2000년 현대투신운용의 바이코리아펀드 불법 운용 사건은 회사가 불량채권을 불법 편입해 고객에게 290억원대의 손해를 입혔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4500만원의 합의금 지급으로 종결됐다.

회사가 소송을 제기한 17명의 투자자들에게만 소취하조건으로 합의금을 지급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집단소송제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현재와 같은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이 당시 있었더라도 바이코리아펀드 불법 운용 사건은 소송대상에 포함되지 못했을 것이다.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은 자본시장법에서 명시한 손해배상 관련 조항에 따라 집단소송을 제기하도록 돼 있다. 자본시장법은 증권거래법이 페지되고 제정됐다.

자본시장법은 증권과 파생상품을 포괄하는 '금융투자상품'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하지만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은 달라지지 않았다. 현재 ELS(주가연계증권) 기초자산에 대한 시세조종 사건은 집단소송 대상이지만 실질적으로 내용이 같은 옵션관련 기초자산 시세조종 사건은 대상이 되지 못한다. 증권관련집단소송법에는 금융투자상품 개념이 도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황당한 관할지 조항 = 2005년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이 도입될 당시 법무부가 제출한 초안에는 피고 거주지 관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토지관할 조항이 없었다. 하지만 법 제정 막판에 해당 조항이 삽입됐다. 토지관할은 피고가 여럿일 때 문제가 된다.

ELS 시세조종 사건과 관련해 집단소송의 대표당사자인 양 모씨는 한화증권을 상대로는 서울남부지법에 소송을 냈고 로얄 뱅크오브 캐나다(RBC)를 상대로는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제출했다. 나중에 서울남부지법 사건이 서울중앙지법으로 이송됐지만 양씨는 두 사건을 별도로 진행하고 있다. 소송당사자들은 '피고가 여럿일 경우 1명의 관할지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함영주 중앙대 로스쿨 교수는 "법률에 소송 관할지 제한 조항 같은 것을 둬서 사실상 투자자들이 소송을 못하도록 막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문서제출 강제 조항 둬야 = 집단소송이 다수의 피해자를 구제한다는 측면에서 공익성이 있는 만큼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증거조사의 특칙'을 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GS건설 집단소송에서 소액투자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문서목록제출명령을 신청했고 법원은 GS건설에 제출명령을 내렸지만 이행이 되지 않았다. 민사소송법은 문서 미제출에 대한 제재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금융감독원 역시 법원이 금융거래정보 제출명령 또는 문서제출명령을 내려도 금융실명법을 이유로 법원의 제출명령을 거부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문서제출을 거부하면 그 문서로 증명해야 할 사실이 다른 증거로 증명이 곤란할 경우 법원이 원고측 주장을 사실로 인정하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김주영 변호사는 "미국의 경우 상당수 집단소송이 판결로 가지 않고 중간에 화해조정으로 피해자들이 구제받는 이유는 법원이 문서제출을 강제하고 있어 소송이 진행될수록 회사가 불리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은 최근 3년간 3건 이상의 증권관련집단소송에 대표당사자와 소송대리인으로 관여한 경우 대표당사자나 원고측 소송대리를 맡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도 대표당사자에 한해서는 집단소송을 반복할 수 있다며 해당 조항을 두고 있지만 소송대리인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결과적으로 법률이 집단소송의 경험이 풍부한 전문 변호사들의 원고측 소송대리를 막고 있는 것이다. 반면 피고측 소송대리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함 교수는 "증권시장에서 기업의 분식회계 허위공시 등 각종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피해자들이 직접 배상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집단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때에 사기를 통해 얻고자 하는 이익동기가 배제될 수 있고 반사적 효과로 기업내부의 경영투명성도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무용지물 전락한 증권집단소송제' 연재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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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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